간밤에 꿈이 뒤숭숭했다. 뒤척이다 일어나서 늦은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가지 접붙이기를 도와달라고 하였다.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새로운 경로-논두렁길-를 통하여 작업장에 갔다. 오늘의 임무는-접붙이기보다 난이도가 낮은- 모종 옮기기였다. 손톱 밑이 흙으로 새까매졌다. 손톱깎이는 안 가지고 왔는데, 깎아야할 때가 너무 빨리 돌아왔다. 같이 일을 한 아주머니는 지난 총회 때 뵌 적 있는 분이었다. 나름은 구면이지만 양 쪽 모두 알아보지 못하고, 낯을 가렸다. 씨감자를 가르면서 미사 시간을 물어보며 아는 체를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샤워를 하고 근처 슈퍼로 나갔다. 밝을 때 돌아왔더니 못내 아쉬웠다. 과자와 베이컨을 사서 돌아왔는데, 생각해보니 맥주를 사왔어야 했다. 걸어서 10분쯤 걸리는 곳이지만 나갈 때는 왠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여기에서 무엇보다 필요한건 익명성인데, 논두렁을 걷고 있으면 주민들이 빤히 쳐다보는 것 같다(도끼병인가...). 할머니쯤 되는 분들은 정말로 빤히 쳐다봐서 민망스러운 인사를 올리게 된다. 도로를 걷고 있노라면 지나가는 차들이 이따금씩 속도를 줄이는 것 같은건, 보행자를 배려한 것인지 아니면 갑작스레 출현한 낯선 얼굴을 분간하기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과민한 반응이려나.
오늘은 필드노트를 필드일기보다 먼저 끝내는 기염을 토해냈다. 필드노트가 짧아서인 것만 같다. 어제 필드 중인 다른 동기 언니와 통화하면서 한 얘기지만, 이래서 논문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 초기단계니까..하고 있지만 챙겨온 몇권 안 되는 책도 읽지 않으니 정말 탈-대학원생하고 있는 듯하다. 여러가지로 걱정이다. 멍청한 필드워커는 어제 산 메모장을 집에 두고 나갔다. 이러다 정말 장기 농활이 되는건가.
필드워크의 시조이며 모범이라는 20세기의 모 학자께서 쓰신 바 있었던 일기는 나름 그쪽 동네에서는 가십거리로 여겨지는데(학자의 성찰성에 대한 논의도 불러일으켰다고하지만..), 그 일기 쓰는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면 너무 되바라진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