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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2014. 6. 30. 00:00 from 場中日記

아침에 일어나서 꿈지럭거리다가 성당에 갔다. 성당 갔다가 돌아온 것으로 오전이 다 지나갔으니 말 다 했다. 면 중심지는 오늘이 장날이었다. 아침을 챙겨먹다 말고 버스 시간 맞춰 나가야 했기에 배가 고파서 미사가 끝나고 분식트럭에서 핫도그를 사먹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본격 그 간의 면담 정리를 시작했다. 잉여포텐폭발과 더불어 대자연의 섭리가 시작되어 한 문단 쓰고 딴짓하고 한 페이지 쓰고는 누워서 요양하다가 오늘 내내 고작 인터뷰 두 개 정리했다. 아직 정리할 인터뷰가 두 개(사람은 세 명) 남아 있는데, 시작할 때부터 일요일 하루로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월요일도 희생시켜야 할 듯 하다. 필드 날짜가 얼마 안 남아서 이렇게 집에서 면담 정리를 하고 있자니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 타고 나갔다 돌아오긴 했지만, 나머지 반나절은 칩거하기도 했고 슬슬 붓기도 빠지고 발목이 좀 괜찮아진 것도 같다. 내일 오전까지 면담 정리하고 나면 자전거 페달 밟을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욕심부리지 말고 일찍 자고 아침부터 다시 면담 정리해야겠다. 

Posted by 수현  :

0628

2014. 6. 28. 23:01 from 場中日記

아아아아아. 


2박 3일만에 돌아온 방에는 냉장고 문이 빼꼼하고 열려 있었다. 크지도 않은 작은 냉장고 안이 얼음과 성에로 뒤덮였다. 분명이 태반이 상했을텐데 그거 확인할 기력도 없어서 아이스팩만 빼꼼히 (얼음과 성에에 뒤덮여 묻혀 있는데서 파서) 꺼내고 닫았다. 이 현실은 좀만 있다가 대응해야겠다...... 


27일의 일기. 

아침부터 서둘러 강변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남양주로 갔다. 차라리 강원도에서 오면 가까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교통이 편해서(?) 일산보다 가깝다는 느낌이었다. 매우 협조적이며 이해심 있는 피면담자께 친구분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하였더니 불러주셔서 1:2 면담을 했다. 면담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려니 붙잡고 밥도 사주셨다. 밥 까지 얻어먹고 다시 허우적거리며 학교 근방으로 돌아오니 세미나 시간이 가까웠다. 세미나에 뒤풀이에.. 할증 붙은 택시로 집에 돌아왔다. 뒤풀이는 나름 소득이 있는 것이었다. 


28일의 일기. 


그렇게 돌아와서 배터리를 교체하여 보니 동아리 친구들 카톡방에 삼백여개의 카톡이 있었는데, 오전에 간단하게 농구하고 놀다 누군가의 취직턱으로 밥을 먹자고 하였다. 두 시에 면담을 잡았으니 밥은 못 먹겠지만 잠시 들러 얼굴이나 볼까 하고 얘기했다. 그렇게 잠들고 일어났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오전에 시간이 남으면 논문을 읽던 문헌을 검토하던 면담을 정리하던 준비하던 뭔가 생산적인 일을 했어야만 했었다. 노트북이 없어도, 피시방이라도 가야했었다. 놀고 싶은 마음에 간 농구코트에서 같이 농구를 하다가(=폐를 끼치다가)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혼자 톡, 하고 발목을 삐었다. 야, 나 선수교체해줘 못 움직일거 같아 라고 하니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다고 쉬러가자고 했다(=교체할 사람 같은거 없음). 그리고 가까운 친구 집에서 에어컨 쬐며 미쿡야구를 보는데, 나올 때 쯤에는 발이 부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놀란 마음에 가까운 정형외과에 가보니 X-ray를 찍고는 인대가 늘어난 것 같다며 발목보호대를 주고 가급적이면 움직이지 말라고 한다. 이거슨 나보고 필드를 하지 말라는 말인가. 절뚝거리며 이 핑계다 하며 택시를 타고 면담하러 갔다. 


면담은, 학부 선배인 사람인데, 시간이 없다고 하는 사람에게 굽신 조아림 송구 콤보로 약속을 잡아낸 것이었다. 시험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는 분은 다소 장황하게 얘기를 해주셨는데, 역시나 발목을 삐며 경황없음이 100 증가하고 이동성이 10 감소한 나는 녹음기를 킬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이건 내 주요 연구 대상이 아니었습니다'로 정신승리를 시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면담을 마치고 (여전히 절뚝거리며) 지하철 2호선을 반 바퀴 정도 돌았다. 여기에서는 집회가 한창이었는데, 내가 있던 지역에서는 7명 정도가 올라왔다. 전경에 구경하는 사람에 집회 참가자에.. 바글거리는데서 어떻게 또 용케 사람들을 찾았다. 자리에 앉아서 간간히 투재앵~하는 추임새를 거들며 학부 다니는 내내 이런걸 도망다녔던 생각을 했다. 물대포는 우리가 자리를 뜬 이후에 쏘아졌다고 했다. 거친 발성과 말투로 선언을 외치는 각계의 대표들을 보며(그 중에는 우리쪽 사람도 있었는데, 이전에 뵜던 자리에서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말투와 목소리를 기억하며, 집회의 말하기 방식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따라 다녔어도 좋은 필드였을텐데 하고 생각도 하긴 했다. 예전에 학부 과제로 모 청년 단체 관련 필드를 하면서 운동의 방식이 투재앵~에서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로 변화하는 것 같다 하고 소결을 내린 적이 있는데,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곳도 그러한 새로운 방식의 운동 중 하나라고 생각은 하는데, (이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무겁고 '남성적이고' 거친 방식의 운동이 아직도 여전히 있고, 표현 방식이 다양해진(혹은 영리해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갈 길이 먼 지방 사람들은 길을 재촉[?]해서 여섯시쯤 빠져나와서 이래저래 차와 차를 갈아타고 밥을 먹고 하다보니 열시 좀 넘어 집에 들어왔다. 일기를 쓰고 나니 도저히 필드노트를 쓸 멘탈이 아닌 것을, 아아아. 냉장고와 발목이 정신을 갉아먹는다. 


Posted by 수현  :

0626

2014. 6. 27. 09:10 from 場中日記
명명컨대 친인척의 날이었다.


아침에 밥 챙겨먹고 읍으로 가서 근방의 시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영혼없이 실려서 도착하니 약속한 면담 시간이 빠듯해서 알아둔 버스를 타지 않고 택시를 탔다. 조공용 음료수를 들고 방문한 집에서는 모녀가 조근조근 이야기를 잘 해줬다. 거듭 여기는 정말 살기 좋은 도시 같다고 감탄을 연발해댔다. 나와서는 아이스커피 한 잔을 마시고는 다시 터미널로 돌아갈 기운이 나지 않아 가까운 전철역으로 갔다. 본디 다음 일정이 있는 경기 서북부의 시로 곧장 시외버스를 탈 생각이었는데 급작스럽게 전철을 타자 세번인가를 갈아타고 네 시간 가량이 소요된다고 하였다. 시간이 충분은 하겠지만 생각만 해도 피로하여 전철 다른쪽 끄트머리에 부근에 사는 모계 평행사촌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그래도 한 시간쯤 소요되었지만 모계 친척네 의탁하여 라면도 먹고 티비도 보고 놀았다.

다음의 인터뷰를 갈 방법을 고민하며 구체적인 주소를 알아야겠다 싶어 인터뷰이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당연히 면대면 인터뷰라고 생각했던 나와는 달리 그 분은 지금껏 전화인터뷰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래서 서로가 당황해있다가, 의사소통에 오해가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 가는 중이니 양해를 해주십사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례한 행동이나, 당시의 나도 무례하게 대하여졌기에 퉁....치고 싶다. 여튼 늦은 시간의 인터뷰인줄 알고 모계 친족과 밥이라도 먹고 가려했으나 상황이 바뀌다보니 급히 이동해야했고 여기에서 모계 평행사촌을 셔틀로 (또) 사용하게 되었다. 다음에 조공을 좋은걸로 해야지...

그렇게 도착한 두 번째 인터뷰 장소는 부계 평행사촌이 사는 동네였다. 인터뷰 끝나면 커피라도 마시자는 연락을 넣어두고 인터뷰를 갔다. 가면서 예의와 화해의 제스처로 과일을 두 봉지 샀는데, 꽁한 마음이 안 풀린 나는 제 3의 봉다리에 과일을 좀 빼돌려두었다. 화를 내고도 미안했는지 피면담자께서는 사과의 말과 함께 인터뷰 끝날 무렵에는 본인은 안 쓰신다며 모 커피전문점의 기프티콘을 주셨다. 그렇게 일견 훈훈해보이게 두 번째 인터뷰도 마치고 부계 평행사촌 부부를 만났다. 이번에 보는게 세번째인가 싶은 형부께오선 소고기를 사주셨는데, 아마 내 연락 때문에 두 분은 식사를 안 하고 기다리셨나보다. 소고기는 옳으시며 언제나 모든 심신의 고통을 치유해주는듯 하다. 밥도 먹고 신혼집 구경도 하고 돌아왔다.

막차 시간이 가까울 무렵 지하철 근처에는 버스에 자리가 없을만큼 우글거렸다. 도시의 인구밀도를 견디지 못하며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Posted by 수현  :

0625

2014. 6. 25. 20:50 from 場中日記

배고픈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를 열고 경악했는데, 한 동안 밥 해먹기를 게을리하였더니 쌓인 식재료의 양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가지 두 개를 썰어 가지튀김으로 만들어 맥주랑 마시며(맥주는 냉장고에 사다둔 것만 마시고 끊을 생각이다. ..는 건강검진의 굴욕을 되갚고야 말겠다는 다짐.) 당분간은 열심히 쌓인걸 먹어야 이주 안에 덜 버리고 덜 챙겨서 올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튀김에 맥주를 마시니 배가 부르다. 


어제의 필드노트 정리는 (중간에 놀긴 했지만) 두시 쯤에야 끝났다. 아침에는 일어나서 빨래를 했다. 출근[?] 하려는데 집주인 아줌마를 만나 뜻하지 않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워들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얘기한걸 노트에 정리해서 필드에 도착했더니 점심 무렵이었다. 필드에서 우연찮게도 직접 온 소비자를 하나 만나 덥석 하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연락처를 받았는데, 참 독특한 사람이었다. 이후 작업장에서 알짱거리며 그 동안 못 물어본 것들도 물어보고, 다른 밭에 가서 다른 분 일하는데서 또 알짱거리며 질문을 했다. 그 과정에서 정든 펜 하나가 유명을 달리하여 조침문 대신에 조펜문이라도 지어줘야 하나 싶었다. 자전거 타고 이동하며 떨어트린 사이에 차에 짓밟힌듯.... 잠시 묵념. 그러고 돌아와서는 계속 일을 방해했으니 뭐라도 도와드려야겠다 싶어서 일 잠깐 돕다가 돌아왔다. 


간만에 필드를 알차게[?] 하고 온 것 같아 뿌듯하다. 일단 좀 씻고, 필드노트 적고, 설문지 다듬고 일찍 자야 내일부터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하겠지. 

Posted by 수현  :

0624

2014. 6. 24. 20:09 from 場中日記


몇 달을 필드를 하고도 부족하다는 느낌에 보충도 하고 필드를 다시 한다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끝날 날만 세고 있다. 집에 들어와서 디데이를 만들어붙이고 나니 마음에 평화가 좀 찾아왔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처음 와서 산 수첩을 다 써서 새 수첩을 샀다. 먼지와 물에 찌들은 수첩이 새걸로 바뀌니 잠시 기분이 좋았는데, 그것도 잠시 수차례의 소나기에 하루만에 너덜거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옆 마을에 갔다. 집단 면담은 처음인데, 뭐랄까.......... 그 동안 면식이 거의 없는 소비자들과도 나름 성공적인[?] 인터뷰를 하면서, 그래, 할 수 있어 하는 마음으로 갔다. 사람들을 모아두니,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혹은 말 해야 겠다는 책임을 느끼는 사람(=활동가)만이 위주로 얘기하고 다른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으며, 아이컨택을 하고 찝어서 물어보면 눈을 피하거나 말을 회피하거나 입을 꾹 다물거나........ㅎㅎㅎㅎㅎㅎㅎㅎ. 과연 이게 본래 있던 곳의 공동 작업 하루를 희생한(...) 가치가 있었는지 의문을 품게 하였다. 


폐 끼치는게 일인 필드워커는 갈 때도 올 때도 다른 사람 차에 얹혀서 갔다. 갈 때는 핑계라도 있었지 올 때는 핑계도 없어서 그냥 얹혀 왔다. 다음 주 쯤에 또 다른 동네에 가볼까 했는데 그 때는 또 어쩌나 걱정이다. 걱정이라고는 해도, 일정이 겹쳐서 다음주에 못 갈듯 하니 마음을 편히 먹어야겠다. 그래 집단면담 같은거.................... 


어쩌다보니 계속 마을 바깥 필드만 하고 있다. 이것도, 불안한 요소 중 하나다. 차라리 마을 안에 집중 하는게 낫지 않을까. 



Posted by 수현  :

0623

2014. 6. 23. 19:08 from 場中日記

오전내로 필드 노트 쓰기를 마치려고 했는데, 조금씩 늦어졌다. 전화가 오면 녹음 기능이 중단되는지라 아이폰 공기계로 토요일에는 녹음을 시도해보았는데, 아이폰의 와이파이 기능이 망가지고 블루투스는 지원이 안 되고 뭐 그래서 음성을 바깥으로 끌어낼 방법이 없더라. USB로 연결해서 동기화해서 각고의 노력 끝에 빼냈다. 이건 다 아이폰의 스피커가 충분히 빵빵하지 않아서 녹음 청취가 잘 되지 않아서이다. 아이폰으로 녹음하는걸 다시 고려해보아야 겠다. 


필드노트를 마무리하고 다시 나갈 때는 오후 무렵이었다. 토요일에 피곤하긴 했는지, 모자도 두고 나와서 모자도 없는데 작업장 까지 걸어가야 했다. 작업장에서는 두부를 만들고 있었다. 딱히 뭔가 캐내거나 소득이 있는 날은 아니었지만 내일의 일정도 잡았다. 내일은 다른 동네로 원정을 가서 집단면담을 하기로 했다. 작업장의 사람들이 바빠해서 어슬렁거리다가 인터뷰 대상자들에게 문자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인터뷰 대상자 들은 무응답으로 응답하거나 거절하는 경우가 좀 있어서, 어찌해야하나 걱정이 된다. 


집으로 들어와서, 오늘은 대충 정리하고 내일의 면담 준비를 해야겠다. 집단 면담이라니 후.... 
소득이 없는 날의 필드노트는 안 쓰면 허무할 마음을 달래기 위해 억지로 쥐어짜는 것 같다. 

Posted by 수현  :

0622

2014. 6. 22. 23:38 from 場中日記

그리하여 일요일에는, 또 다른 친족간의 의무 수행이 있었는데 모계확대친족이 멀지 않은 곳으로 휴양을 와서는 돌아가는 길에 딸(/조카/손녀)과 점심을 먹고 가겠다는 것이다. 지지난주 쯤에 내가 시간이 어디 있냐고 버팅기다가 지난주에는 일단 한 번 일정이나 맞춰보자고 했는데, 필드 하루 쯤은 더 쉬어도 될 것 같아 밥을 먹자고 하였다. 


토요일 저녁에 그렇게 쓰러져 자면서는 그래 필드노트를 일요일 오전에 정리하고 오후에는 작업장이라도 들려봐야지 했는데, 보통 이런 계획은 어그러지지 않는가. 모계확대친족들께서는 한가한 오전 중에 방문하셔서 나를 싣고 행정구역을 넘어서 있는 모 산의 모 절을 구경하고 그 근처에서 유명하다는 오리찜을 먹자고 제안하셨다. 핵가족 구성일시에 이런 제안은 단칼에 거절했겠지만 그렇지 않아 사소한 반항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밥을 먹고 나를 근처의 면 사무소 소재지에 버리고 가면 알아서 낮 미사를 보고 귀가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오늘도 낯선 장소에서 미사를 보는 미사 콜렉터가 되고, 집으로 들어온 것이 다섯시 무렵이었던 것 같다. 


모계확대친족의 차에 실려 나갈 때에는 근처 부대에서 무장한 군인들을 몇 트럭씩 차로 실어 내보내고 있었다. 이모는 사촌오빠가 군대에서 비슷하게 뺑이쳤던(...) 이야기를 해줬다. 집으로 돌아올 때 탄 마을 버스에는 버스 한 가득 군인이 타고 있었는데 지치고 피곤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아마 이들은 나갔다가 급히 복귀중이겠지 싶어 찡했다. 


집으로 들어온 뒤 일단 눕기(....)를 실천했는데 그러다 잠 들었다가 방금 깼다. 그냥 마저 잘까 하다가 필드노트도 한 줄도 안 썼는데 일기도 안 쓰면 하루가 너무 생산력 낮은 날이 되는거 같아서 일기라도 쓴다. 내일 아침에 필드노트를 쓰고 오후에는 필드를 해야지. 

Posted by 수현  :

0621

2014. 6. 22. 23:28 from 場中日記

금요일 저녁에 아슬아슬하게 집으로 들어온 후, 누워 뒹굴 거리며 선배와 이야기하다가 문득 지난 몇일동안 한 얘기를 일관되게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를 키고 한글문서 한 장 좀 넘는걸 싸지르다가(...) 두시 넘어서 잤다. 21일의 이벤트는 그러니까, 일종의 손님치르기였는데 아이들을 포함한 세 가족이 온 것이다. 


행사는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몸을 일으켜 간 작업장은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하나 둘 씩 가족들이 도착했다. 한 집에 평균 2명의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애들이 모여서 바글거리면 아빠와 여행을 떠나는 모 예능 비슷한 풍경이지 않을까 했는데..... (이하생략)

 대화의 시간에는 건질게 많다 싶어서 녹음기 켜두고 열심히 메모하고, 끝날 무렵에는 인터뷰해주십사 하고 읍소를 하고 어쨌든 건질건 많은 날이었다. 중간에 잠이 부족해서 꾸벅꾸벅 졸긴 했지만.... (대체 학교로 돌아가면 어쩔지 걱정이다)


뒷정리 하고 나서도 한참은 비가 쏟아져서 나가지 못했다. 손님들이 비 속에 갖히는게 아니냐고 걱정하며 비를 뚫고 가고 나서, 마지막에는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사람들이랑 말을 하면서도 반쯤 졸고 있었던 듯 하다. 차를 얻어타고 도착한 집에서 일단 좀 쉬고 시작하겠다고 누웠다가 열시 넘어 일어났다. 일어나서는 이만 닦고 다시 잔 것 같다. 필드노트도, 일기도 쓰지 않고. 컴퓨터도 켜지 않았으니. 

Posted by 수현  :

0620

2014. 6. 21. 00:26 from 場中日記

교통수단 이용 시간을 잘못 계산하여 마을로 들어가는 막차를 놓쳤다. 삼십분 걸리는 거리를 택시를 질렀다. 그렇게 식권 8장 정도를 땅에 버리며 왔다. 읍 바깥으로 벗어날 때 쯤 어두워졌다. 이 시간대에 차 타고 이 근방을 다닌게 처음이라, 문득 무서워졌다. 다행인 것은, 택시 타려는 무렵 비가 후두둑하고 왔는데 집에 들어올 때까지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것이다. 들어와서 짐을 풀고 좀 누웠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그쳐야할텐데. 


2박 3일의 서울에서의 일정은 중간의 키 이벤트 취소에도 불구하고 영양가 있는 것이었다. 세 명의 면담자들은 각각 특징적으로 다른 사람들이었고, 사람들과의 대화는 수첩 속에서 뒹굴던 철근들을 골격으로 짜올렸다. 맛있는 술도 마시고, 그래서 완전한 공복은 아니었지만 건강검진도 받고 왔다. 


쓸까 말까 했는데 이런 것도 나중에 기억을 복기할 때에 내가 있었던 상황의 맥락 중 하나가 될 거라는 생각에 쓴다(는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외출하기 전에 잠깐 머리를 스쳤던 우려는 현실... 이상으로 나타났었다. 싫은 것들이 켜켜히 쌓여 화가 났고, 극도로 화가 나면 잠 들지를 못하더라. 여전히 결코 이해하지 못한 것은 그 상황에서 시상을 떠올릴 수 있다는거다. 말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음식물쓰레기를 두면 벌레가 꼬인다는 사실의 적시 뿐이었다. 아아... 




내일은 진짜 필드로 다시 돌아간다. 

Posted by 수현  :

헐.

2014. 6. 18. 23:22 from 場中日記

방금 알았는데, 내일의 일정 하나가 취소 되었다. 이 행사에 맞추어 다른 일정을 잡고 올라왔는데.... 어...어어? 어?

Posted by 수현  :